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감사하게도, 운 좋게, 그리고 아직까지는,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산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재밌는 일이다. 얼마나 재밌냐 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야호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구나!’라고 소리지를만큼 재밌고, 자기 전에 ‘내일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라나’라며 히죽거릴만큼 재밌다.

그만큼 죽는 것도 싫다.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이 좋은 삶이 없던 게 된다니, 슬프고 무섭고 아깝다. 그래서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가끔씩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나를 스칠 때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공포인지 뭔지 하는 감정이 배 밑에서부터 올라올 때마다, 머리를 흔들며 삶의 감사함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답 안 나오는 문제는 풀지 말자는 주읜데, 나한텐 죽음이라는 주제가 그렇다.

그렇지만 언젠간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낄 때가 올 거다. 조금씩 조금씩 내가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껴야 할 때가 올 거다.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올 거다. 물론 커즈와일 할배가 말하는(혹은 바라는) 것처럼 25년만 버티면 인간이 영생을 하게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나. 그래도 사는 데까지는 살아야지.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벌써부터 괴롭게 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일이니까. 다행히 늙는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쌓아온 삶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해서, 즐길라 치면 더 멋지게 즐길 거리가 많은 것이라고 하기도 하더라. 뭐 실제로 늙어봐야 아는 거겠다만.

그래서 말인데, 연명장치든 뭐든 나는 살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다. 그만큼 사는 건 엄청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설령 몸이 둔해지고 머리가 나빠지고 때로는 마음가짐도 흐트러져서 지금처럼 신명나게 사는 게 어려워진다고 해도, 어쩌면 다시 올지도 모르는 삶의 그 순간의 가능성이 실낱같이 남아있기라도 하면 나는 그 지푸라기를 잡을 생각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잠깐이라도 살아있다는 건.

솔직히 말하면 행복한 죽음, 만족스러운 죽음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건 삶이고, 만족스러운 것 또한 삶이다. 죽음은 최대한 행복하고 최대한 만족스러운 족적의 끝일 뿐이다. 그렇다고 죽음 때문에 슬퍼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삶은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고통받기에는 너무 귀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도 삶이 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을 때, ‘힝 더 살고 싶은데’라고 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즐기면 그뿐이지 않을까 싶다. 헤헿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12월의 트레바리 34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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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