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원 – 이별이란 없는 거야

이별이란 생각으로 울지마

그건 너의 작은 착각일뿐야

가면 어딜 가니 좁은 이 하늘 아래

한동안 둘이 서로 멀리 있는 걸텐데

웃으며 나를 보내줘

언젠가 만나겠지 새로운 모습으로

이별이란 말은 없는거야 이 좁은 하늘 아랜

안녕이란 말은 없는거야 이 세상 떠나기 전엔

 

이야…가사가 정말 주옥같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데, 좋은 노래를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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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원 – 이별이란 없는 거야

뻔한 것보다 구린 것, 그리고 러덜리스

어느샌가, ‘뻔한’ 건 ‘구린’ 거랑 거의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쩌면, 진짜 ‘구린’ 건 어지간히 ‘참신’하지 않으면 도저히 ‘신선함’을 못 느끼게 된 우리일지도 모른다.

어린애들은 매일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 나간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고, 계속 즐거워할 줄 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 연인, 친구, 동료들은 매일 같은 얼굴 속에서도 끊임없이 감사할 점들을 찾아 나갈 줄 안다. 켜켜이 쌓이는 추억들을 만들어 나갈 줄 안다.

물론 콘텐츠가 좋을수록 멋진 경험을 할 확률은 높아진다. 그렇지만 콘텐츠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아마 어떠한 콘텐츠를 접하더라도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관찰력과 애정일 테다.

매일 매일의 뻔한 일상 속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면, 분명 우리는 우리가 생각보다 다채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깊게 파내려가다 보면, 언젠간 우리도 어린아이의 설렘과 노인의 견고함을 아울러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아마 ‘현명함’이란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라 믿는다.

얼마 전, 너무 ‘뻔했던’ 영화 ‘러덜리스’를 보고 든 생각. 그래도 영화엔 밴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로망을 자극할 만한 장면들은 빠지지 않고 다 들어가 있어서,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면 가볍게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난 러덜리스를 보고 노래방에 가서 위저랑 그린데이를 불렀다.

뻔한 것보다 구린 것, 그리고 러덜리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3악장

브람스는 총 세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남겼는데, 그 중 첫 번째 소나타에는 ‘비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3악장 도입부를 ‘비의 노래’라는 가곡에서 빌려왔기 때문이다. 가곡 ‘비의 노래’도 브람스가 썼으니까, 표절은 아니다.

부제가 ‘비의 노래’라고는 하지만, 이 곡을 듣고 비를 떠올려본 적은 없다. 노력해 봤는데 안 되더라. 나한테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그냥 ‘소나타 주제에 그루브한 곡’이다. 그래서 예후디 메뉴인이 연주한 버전을 좋아한다. 예후디 메뉴인은 이 곡을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다소 빠르게 연주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일 들으면서 두둠칫 하기 좋은 느낌이다. 살짝 집시 음악 분위기도 나고.

유튜브에는 메뉴인 버전이 없으니까 링크는 이작 펄만 버전으로. 메뉴인의 연주에 비해 스타일은 좀 더 세련되고, 감수성은 살짝 올드한 느낌이다. 멋쟁이 꼰대 간지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비도 오고 해서 오랜만에 ‘비의 노래’를 들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비 오는 날에는 이상하게 음악이 잘 들린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물론 운 좋게 실내에서 빗소리랑 음악소리를 섞어들을 수 있는 호사를 부릴 수 있는 날에만 좋아한다. 비 오는 날 밖에서 돌아다니는 건 너무 힘들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3악장

모두가 하나되는 순간, dancing in the moonlight

‘Dancing in the Moonlight’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특히 가사를 좋아한다. ‘모두가 달빛 아래서 춤을 춘다네~’라니. 생각만 해도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다. ‘모두’도 좋고, ‘달빛’도 좋고, ‘춤’도 좋다. (참고로 Toploader가 부른 버전은 리메이크다. 원곡은 King Harvest!)

사람은 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도 살다 보면 다르다. 이렇게 다르다 보니까 우리는 죽어도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친해도, 아무리 좋아해도 오해는 생긴다. 그래서 싸웠다 서운했다 한다. 인생은 원래 외로운 거야, 이 말은 그래서 나오는 걸 테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가끔 서로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우리’가 되는 순간이 있다. 축제같이, 선물같이, 기적같이 삶에 남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이따금씩 삶에 박히는 순간들을 위해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십수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수십 년이 지나도 즐겁게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위해.

그런 순간들은 우리가 계속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준다. 저마다의 삶을 짊어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게 해 준다. 그래도 태어나기 잘했다고 생각하게 해 준다.

그런 순간들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Dancing in the Moonlight’의 가사와 같은 순간들을.

대통령도, 재벌 총수도, 편의점 알바도, 초딩도 요플레 먹을 땐 뚜껑부터 핥아 먹는다는데, 요플레만큼만 잘 하면 되겠지. 언젠가는 트레바리가 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엮는 즐거운 놀이터로 클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취향의 정치학>을 읽고 뭐라도 끄적일 요량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가 책 내용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내용을 뱉어 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됐냐하면:

취향은 사람들을 구별짓는다 → 음 너무 나눠지기만 하는 건 좀 그런데 → 뭔가 신나게 하나되는 그런 취향 없을까 → 음악? → 오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

모두가 하나되는 순간, dancing in the moonlight

비비 킹

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나는 내가 언젠가 비비 킹의 무대를 한 번쯤은 볼 일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개구리같이 생긴 뚱뚱한 할배의 단조롭고, 묵직하고, 나긋나긋하고, 따뜻한 무대를 언젠간 진짜 꼭 볼 일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수도 없이 들은 노래.

수도 없이 본 영상. 에릭 클랩튼이랑 버디 가이랑 지미 본이랑 같이 락 미 베이비 연주.

이 노래를 듣고 비비 킹에 대한 에릭 클랩튼의 존경심이 나한테도 옮겨붙는 느낌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비비 킹

Keith Urban의 Cop Car와 선택의 폭

키스 어반

나름 레전드 소리 듣는 뉴질랜드 출신의 컨트리 뮤지션. 90년대 초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데뷔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밴드도 하고, 세션도 하면서 활동하다가 90년대 말에 솔로 앨범을 발표했는데, 이게 그만 100만 장이 팔려 버렸다. 이후로도 딱히 슬럼프 없이 계속 승승장구 해오면서 살고 있다.

얼마나 승승장구 하고 있냐 하면, 니콜 키드먼이랑 결혼도 했다. 그래미도 여러 번 탔다.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심사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고, 최근에는 사업도 시작했는데 이것도 잘 되고 있다…

Fuse

2013년에 나온 키스 어반의 가장 최근 앨범. 전세계적으로 무려 50만 장이 팔렸다. 평단의 반응도 대체로 좋은 편이었고. 그래미에도 노미네이트 됐었다. 미국 음악 시장에서 가장 부러운 게 바로 이런 노익장이다.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와서 막 수십만 장씩 팔아 제낀다. 위의 ‘Cop Car’는 앨범의 세 번째 싱글이자 세 번째 트랙이다.

선택의 폭

Cop Car는 오랜만에 듣는 웰 메이드 록 발라드다.

그래도 오래 들을 것 같진 않다. 정말이지 이제는 어지간한 수작이 아니면 한 사람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 좋은 노래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이게 꼭 좋은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모든 노래가 좋아지는 바람에, 모든 노래들이 안 좋아졌다. 얕고 넓은 인간관계가 허무한 것처럼, 좋은 노래에 둘러쌓인 우리의 음악 세계 역시 감흥이 없어진 거다.

선택을 줄여야 한다. 아무나 만날 수 있는 시간, 그래서 그때그때 가장 땡기는 사람한테 연락해서 만나는 시간은 생각보다 값지지 않다. 그러려니 하고 항상 만나는 사람 만나서 딱히 할 거 없이 보내는 그 시간이 훨씬 값지다. 좀 쌓이고 나서야 값진 걸 알 수 있어서 그렇지.

좋은 노래 백 곡을 한 번씩 듣는 것보단, 그 중 한 곡을 백 번 듣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 깊이를 더하는 건 정기성과 장기성이다. 너무 좁으면 문제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부족한 게 넓이겠나, 깊이지.

들을 노래가 없다, 감동을 주는 노래가 없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본다. 노래가 구려진 게 아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의 삶이 구려진 거다.

모든 게 인스턴트화되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음악마저 그렇게 된다는 건 어찌 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꾸로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다.

Keith Urban의 Cop Car와 선택의 폭

Kanye West – Only One (Feat. Paul McCartney)

2014년의 마지막 날 발표된 칸예의 신곡.

가사가 짠하다. 화자는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난 칸예의 어머니. 괜찮아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마음껏 행복해지라고 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워낙에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칸예라(그래서 2007년 이후 상태가 많이 안 좋았지) 녹음할 때 몹시 힘들어했다고.

이렇게 한 곡에 푹 빠져본 것도 오랜만인데, 라이브 영상을 보면 왠지 깬다. 아무래도 오토튠 때문인 것 같다. 오토튠은 스튜디오에서 세밀하게 매만져야만 진가를 발휘하는 듯.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오디오로만…

무엇보다도 키보드 사운드가 너무 좋다. 슬프다기보다는 서글프고 유려하다기보다는 영롱한 게 딱 내 스타일. 알고보니 폴맥이 친 거였다. 이게 누가 쳐도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건지, 폴맥이 쳐서 이렇게까지 좋은 사운드가 나온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폴맥 짱짱올드맨.

가사는 여기에서. 마지막에 ‘Tell Nori about me’ 부분이 진짜 짠하다. Nori는 칸예의 딸이자 화자(칸예의 어머니)의 손녀.

이 곡 덕분에 폴맥도 25년만에 빌보드 탑 40에 입성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35위. 1월 한달 동안 23만 장을 팔아치웠다. 칸예x폴맥의 저력이기도 하고, 미국 음악 시장의 저력이기도 하겠다.

그나저나 뮤직 비디오 참 못 만들었다.

Kanye West – Only One (Feat. Paul McCart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