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과 사랑, 그리고 욕망

‘상대를 원하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단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나로 인해 상대가 더 좋은 삶을 살게 되길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캐롤은 테레즈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욕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자신과의 관계로 인해 테레즈가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테레즈에게 다가가고, 원하고,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없었을 거다.

그렇지만 캐롤은 결국 테레즈를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떠났다. 테레즈를 사랑하는 마음이 욕망하는 마음보다 커지지 않았더라면, 굳이 떠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자신의 사랑과 욕망을 동시에 잡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건 비싸다. 사랑만 하는 것도 어렵고, 욕망만 하는 것도 어렵지만, 사랑하면서 욕망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 이 때 필요한 건 용기와 각오다. 캐롤은 앞으로 많은 것을 이겨내야 할 거다. 먹고사니즘부터 사회의 시선, 그리고 둘의 관계까지.

자기가 가치를 인정하는 대상에게 그에 걸맞는 값을 지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볼 때마다 멋지다고 생각한다. 캐롤이 테레즈에게 돌아오는 모습은 정말 너무 멋졌다. 당당하게 원하는 모든 것을 거머쥐겠다는 패기는 참 보기 드문 덕목이다.

욕망을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렇다고 욕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면 관계에서 욕망은 사랑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사랑받는 것 못지않게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간절하게 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랑과 욕망은 하도 붙어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종종 하나로 오인받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사랑하려면 제대로 욕망할 줄 알아야 하고, 오래오래 잘 욕망하고 싶으면 꼭 사랑을 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캐롤> OST랑 <신세계> OST랑 되게 비슷하다. 특히 <캐롤>의 ‘The End’라는 곡와 <신세계>의 ‘Big Sleep’라는 곡.


 

테레즈와 테베즈.png

테레즈랑 테베즈는 이름이 비슷하다.

캐롤과 사랑, 그리고 욕망

영화 ‘빅 쇼트’

1월에 트레바리 36에서는 <빅 숏>을 함께 읽었다. 마침 영화로도 개봉한 김에 같이 보러 갔다 왔다. 영하 십팔도를 뚫고!

주인공들이 사악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빅 쇼트’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에 베팅해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면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는 ‘어떻게 하면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나도 이 사람들처럼 대박을 터뜨려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넘나 간사한 것! 그래, 나뿐만 아니라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이렇겠지. 인간은 참 나약하다.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더 나은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줬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엔 좀 씁쓸하긴 했지만.

[씨네21 리뷰] – <빅 쇼트>를 본 당신에게 추천하는 영화 3편

영화 ‘빅 쇼트’

뻔한 것보다 구린 것, 그리고 러덜리스

어느샌가, ‘뻔한’ 건 ‘구린’ 거랑 거의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쩌면, 진짜 ‘구린’ 건 어지간히 ‘참신’하지 않으면 도저히 ‘신선함’을 못 느끼게 된 우리일지도 모른다.

어린애들은 매일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 나간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고, 계속 즐거워할 줄 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 연인, 친구, 동료들은 매일 같은 얼굴 속에서도 끊임없이 감사할 점들을 찾아 나갈 줄 안다. 켜켜이 쌓이는 추억들을 만들어 나갈 줄 안다.

물론 콘텐츠가 좋을수록 멋진 경험을 할 확률은 높아진다. 그렇지만 콘텐츠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아마 어떠한 콘텐츠를 접하더라도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관찰력과 애정일 테다.

매일 매일의 뻔한 일상 속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면, 분명 우리는 우리가 생각보다 다채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깊게 파내려가다 보면, 언젠간 우리도 어린아이의 설렘과 노인의 견고함을 아울러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아마 ‘현명함’이란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라 믿는다.

얼마 전, 너무 ‘뻔했던’ 영화 ‘러덜리스’를 보고 든 생각. 그래도 영화엔 밴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로망을 자극할 만한 장면들은 빠지지 않고 다 들어가 있어서,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면 가볍게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난 러덜리스를 보고 노래방에 가서 위저랑 그린데이를 불렀다.

뻔한 것보다 구린 것, 그리고 러덜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