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추억

1.

선생을 처음 알게 된 건 화장실에서였습니다.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만 해도 화장실에 갈 땐 꼭 무언가 읽을거리를 들고 가기 마련이었습니다. 보통은 만화책이나 잡지를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도무지 마땅한 걸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아버지 방에서 책상 위에 있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나름 고뇌하는 청소년이랍시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 정도면 꽤 힘든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에는 비할 바가 못 됐습니다. 억울한 옥살이라니. 게다가 젊은 나이에 무기징역이라니. 나름 야심차게 미래를 그려 나가던 청년이었을 텐데. 미래가 없다는 것처럼 사람을 쉽게 절망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생의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품격을 더해 갔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은 스스로를 계속해서 갈고 닦아 나갔던 걸까. 혹시 모를 출소 후의 삶을 위해서? 그러기엔 선생은 ‘오늘’들을 너무 소중하게 대했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한 인간의 지적, 인간적 성숙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저는 그날 화장실에서 한 시간 반을 있었습니다. 아직도 화장실에서 나와 엉덩이께를 두드리며 남은 책을 마저 읽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부터 힘든 일이 있을 땐 선생을 떠올렸습니다. 한 무기징역수의 담담한 성찰들을 떠올렸습니다. ‘도둑에게도 배울 게 있다’던 선생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선생의 글에는 일면식도 없는 어린애의 멘탈까지도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2.

선생을 처음으로 직접 뵌 건 스무 살 때였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하는 운동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리는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선생과 같은 돗자리에 앉는 특혜를 누렸습니다. 우리 돗자리에는 사람들이 쉴틈없이 들락거렸습니다. 사람들은 선생에게 무언가를 드리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이거 꼭 챙겨 가세요,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선생에게 잘 보여봐야 딱히 떨어질 만한 건 없을 터였는데도요.

아, 이게 존경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존경’이라는 단어를 실제로 본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선생은 키가 작았습니다. 160을 갓 넘길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선생과 이야기할 때면, 이상하게 올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이 말할 때면 마치 해일이 밀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우라’라는 게 진짜 있긴 한가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은 우리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참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쯤 되는 사람이 무언가 말하려 하기보다 무언갈 물으려 한다는 게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그 때는 몰랐습니다.

갈 때만 해도 ‘신영복은 어떤 사람일까’라고 하던 우리는, 돌아오는 길엔 ‘신영복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존칭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집 앞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우리도 꼭 저런 사람이 되자’는 이야기를 나눴던 게 생각납니다.

3.

선생을 탐탁찮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선생은 왜 구체적인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지금껏 쌓아올린 명예 때문일까. 왜 뻔한 말만 할까. 왜 틀릴 위험 없는 좋디 좋은 말만 할까. 너무 비겁한 거 아닌가. 선생정도 되는 어른이면 조금 더 나서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선생을 우러렀던 만큼 서운했던 마음도 컸습니다.

그 때쯤 리영희 선생이 세상을 떴습니다. 리영희 선생을 보내면서, 그의 절필 선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신영복 선생의 침묵 아닌 침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어쩌면 선생의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이해해도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망가지지 않고 한결같이 시대의 스승으로 남아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신영복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