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화폐 총량

<사피엔스> 255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주화와 지폐(은행권)는 화폐의 유형으로서는 드문 것이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약 60조 달러지만 주화와 지폐의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 돈의 90퍼센트 이상, 우리 계좌에 나타나는 50조 달러 이상의 액수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60조 달러? 에게, 겨우 이것밖에 안 되나?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인 알파벳(구글)과 애플의 시가총액이 5,500억 달러 정도다. 아무리 잘나가는 회사여도 그렇지, 회사 하나가 전세계에서 돌아다니는 돈의 1%짜리라는 건 좀 이상하다. 심지어 올해 안으로 상장될지도 모른다는 아람코의 가치는 잘하면 10조 달러는 된다는데 말이다.

당장 세계 최대의 주식거래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만 봐도, 20조 달러를 살짝 밑도는 수준이다. 나스닥, 런런, 도쿄는 각각 5조 달러 규모고, 상하이가 4조 달러, 홍콩, 유로넥스트, 선전이 3조 달러 정도. 서울은 1.2조 달러로 15위다. 혹시나 해서 1위부터 15위까지 더해 보니까 2015년 기준으로 딱 60조 달러 정도다. 전세계 다 합치면 70조 달러.

응? 그럼 60조 달러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온 거지? 혹시 번역이 잘못되었나 싶어 찾아보니 번역에는 문제가 없다. 그래서 더 찾아봤더니 ‘broad money’라는 개념이 있다. 경제학에서는 광의통화 혹은 m2라고도 부른다. 지폐랑 동전에다가 은행 구좌 잔고, 만기 2년 미만의 금융상품 등 현금화가 쉽고 빠른 돈을 합쳐놓은 액수를 말한다.

아마 <사피엔스>에서 언급한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이 broad money를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가장 최근에 집계된 world broad money의 규모는 약 81조 달러다. <사피엔스>가 2011년에 나왔으니, 그새 21조 달러 정도 늘어났나보다.

재미있는 건, ‘주화와 동전’은 현재 5조 달러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발 하라리가 책을 쓸 때와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뜻. 그러고 보면 일단 나조차도 5년 전보다 동전은 물론 지폐를 훨씬 덜 쓰고 있다. 사회의 개념화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구나.

그 외에도 흥미로운 통계 자료들이 꽤 많다. 전세계에 있는 비트코인을 합치면 50억 달러. 전세계에 있는 금과 은은 각각 7.8조 달러와 140억 달러. 미국 국채의 총합은 4.5조 달러.

뭔가 괜히 무시무시한 통계도 있다. 전세계 채무의 양이다. 199조 달러다. 이 중 30% 가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생겼다고 한다. 전체 채무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건 나라 빚이다. 60조 달러 정도. 4대 채무국인 미국이 17조 달러, 유럽이 16조 달러, 일본이 12조 달러, 중국이 4조 달러 어치의 돈을 갚아 나가는 중이다. 국가 채무 1,200조에 빛나는 한국도 한국이지만, 세계는 세계를 팔아도 반도 갚지 못하는 빚을 지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레버리지 세상!

제일 규모가 큰 숫자는 파생상품(옵션, 선물, 스왑 등) 관련 통계에서 나온다. 전세계 파생상품 가치의 총합은 무려 630조 달러에서 1경2천조 달러. 이쯤 되니까 괜히 세계 경제가 꽤나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빅 숏>을 읽은 다음이라 그런지 이른바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안전장치에 대한 불신이 커진 요즘이라 더 그런가보다.

하여간에 <사피엔스> 재밌는 책이다. 전체적인 흐름도 재밌고, 이렇게 부분 부분에 꽂혀서 각종 뻘글을 써내게 되기도 하고. 두꺼워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두번일겅 세번일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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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화폐 총량

던바의 숫자

장안의 화제, <사피엔스>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알고 지내며 효과적으로 뒷담화를 나눌 수 있는 보통 사람은 거의 없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52페이지.

‘던바의 숫자’가 떠올랐다. ‘던바의 숫자’는 옥스포드 대학의 로빈 던바 교수가 1992년에 제안한 개념이다.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는 평균적으로 150명 정도라는 게 주된 내용. 여기서 ‘친밀한 관계’란 급만남에도 어색하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를 말한다. 그래도 에너지가 넘치면 230명까지는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에너지가 없는 사람의 경우엔 100명 정도가 한계라고.

실제로 대부분의 자연 부락의 규모는 150명 정도였다. 카이스트의 정하웅 교수 팀이 2005년에 싸이월드에서 40만 명의 사용자들이 주고받은 일촌평을 분석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11년 전만 해도 우리 모두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싸이월드를 하고 있었구나. 아무튼, ‘던바의 숫자’에 따르면 아무리 페이스북 친구가 많아도 결국 우리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150명 정도다.

그래서 친구 수를 150명으로 제한한 SNS 서비스가 나오기도 했다. 작년에 카카오에 인수된 패스(Path)가 그 예. 실제로 창업 당시 던바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그나저나 카카오 입장에서는 송지호 부사장을 대표로 앉혔을 정도니까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트래픽이 꾸준히 성장중이라던가 수익화의 길이 보인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딱히 나오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하기야 아직 인수한지 1년도 안 됐으니까 뭐.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던바의 숫자’라는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는 행위가 필요한데, 페북이나 카톡 등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적은 에너지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심화하는 데 필요한 소통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기술의 도움을 받아 보다 많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할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요즘 같이 바쁘게 사는 세상에선 가까운 사람이 150명이 아니라 15명만 돼도 감사할 지경 아닌가. 그렇지만 조직적인 관점에선 매우 흥미로울 수도 있어 보인다. 공동체가 효과적으로 협업을 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구성원들의 관계는 사실 그렇게까지 깊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같은 회사라고 더 잘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모튼 한센 하버드 경영대 교수가 쓴 <협업>에도 이런 얘기가 나왔었다. 한센은 좋은 협업에 필요한 건 강한 유대(strong ties)가 아니라 약한 유대(weak ties)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으로 ‘약한 유대’를 맺고 유지하기가 쉬워졌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전보다 조직의 규모를 크게 가져가면서도 협업의 효율은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던바의 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