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12 예비군 이야기

예비군 훈련 갔다가 주워들은 이야기 몇 개. 6시간동안 입 한번 안 열고 열심히 주변 사람들 떠드는 거 훔쳐 들었다. 생각해 보니까 뭔가 찌질하네 ㅋㅋㅋ

1. 인형뽑기 사업

내 뒤에 앉아 있었던 덩치 큰 엉아는 아버지, 삼촌과 함께 인형뽑기 사업을 한다고 했다. 제법 잘 돼서 얼마 전엔 300만원짜리 오토바이도 하나 뽑았다고. 뽑기 기계 하나당 가격은 200만원 정도인데, 이걸 가지고 편의점이나 도로변에 월세를 내고 설치하는 거라고 한다. 월세는 편의점 같은 경우 25만원 정도고, 도로변은 15만원 정도인 모양. 지금 52대 정도를 굴리고 있는데, 하루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수금하고 인형 채워 넣느라 운전만 12시간씩 한다고 했다.

2. 동대장은 5급 사무관

지역(주로 동 단위다) 예비군 훈련을 담당하는 동대장은 군인이 아니라 공무원인데, 5급 사무관이라고 한다. 우리 동네 동대장 아저씨 같은 경우 전역 후 열심히 공부해서 작년 말 합격했다고. 경쟁률은 10대 1 정도였다고 한다. 68년생인가 그랬는데, 아들 뻘 되는 예비군들의 무례를 애써 무시해 가면서 훈련을 진행해 가는 게 짠했다. 동대장 아저씨는 훈련 도중 갑자기 한숨을 쉬면서, ‘여러분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 열심히 다니세요’라고 했다. 먹고 사는 게 정말 보통이 아니라며.

3. 복장(태도)이 중요해지기 시작하면

예비군에서 제일 중요한 게 복장이다. 지퍼 채워야 하고, 고무링 해야 하고, 쓰지도 않는 모자 꼭 가져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이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은 군대 말고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군대에서 도대체 왜 복장이며, 목소리 크기며, 태도며, 멘탈 같은 걸 그렇게도 강조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뭐긴 뭐겠나. ‘고작 이런 것들’이 아니면 사람을 가를 수 없기 때문이지. 유지시키는 게 고작이거나, 쓸데없이 비대하거나, 성과라는 게 너무 주관적인 조직일 경우 이런 ‘낭비’가 일어나기 쉽다고 본다. 군대가 대표적이겠고. 대기업도 그렇고.

그래서 말인데, 조직 내에서 ‘애티튜드’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나오기 시작하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하다하다 할 게 없어서 태도 걸고 넘어지기 시작하는 것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생산적인 조직 내 정치를 근절하고 싶다면, ‘멘탈’ ‘태도’ ‘정신력’ 같은 단어들부터 조심하자. 이 단어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이 단어들이 굳이 입밖으로 튀어 나와야 하는 맥락이 대체로 나쁘기 때문이다.

4. 스트레스의 원인 – 통제, 접근성, 가치

한 저명한 심리학자에 따르면, 스트레스의 원인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1. 통제: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2. 접근성: 자신과 가까운 사람 – 가족이나 연인, 친구 같은 – 과 닿을 수 없을 때
  3. 가치: 자신이 하는 일에서 정당성을 느낄 수 없을 때

이 이론대로라면, 어떤 회사가 1) 안정적이고, 2) 단합 잘 되고, 3) 유의미한 방법으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구성원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다. 물론 몹시 비현실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그래도 회사가 뭘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힌트를 줄 수 있는 이론인 것 같다. 가치를 지향할 것. 그 가치에 공감하는 동료를 찾을 것. 그리고 생존의 압박을 덜 느끼는 비즈니스를 할 것.

말하면서 <제로 투 원>을 떠올렸다. 피터 틸이 묘사한 페이팔의 모습이 대충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비슷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나름 가치 중심적이면서 끈끈한 집단이었고, 이른바 창조적 독점을 통해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고. 물론 개인적으로 <제로 투 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는데, 어줍잖게 까느니 강규영 씨의 독후감 링크를 거는 게 훨씬 나을 듯. 오랜만에 읽으니까 너무 좋다…인규형 소개로 곧 뵙기로 했지롱.

참고로 예비군에서 이 이론(?)을 설명해준 이유는

  1. 강인한 멘탈로 불확실한 상황이 주는 공포를 이겨내고
  2. 뜨거운 전우애로 가족보다 끈끈한 정을 느끼고
  3. 조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가슴벅찬 보람을 느끼자

고 얘기하기 위해서였다…

150312 예비군 이야기

상향평준화의 시대에서 비즈니스질 하기

얼마 전에 신촌을 대표하는 참치집에서 저녁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그런데 서비스가 최악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따위 서비스로 신촌이라는 거대한 상권에서 특정 메뉴를 대표할 수 있는 거지? 대답은 간단했다. 옛날엔 이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실제로 이 식당은 급격하게 망해가고 있다고 한다. 이젠 분위기도 좋은데다가 가격도 합리적이고 친절하기까지 한 맛집이 너무 많다.

그러고 보니 미술 전시를 볼 때도 이런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림을 엄청! 무지! 많이!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더 이상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으로는 미술 시장에서 활약할 수가 없게 됐다. 아, 바야흐로 상향평준화의 시대구나.

예전에는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워낙 드물었기 때문에, 웬만큼 구려도 충분히 ‘이정도면 좋은데?’라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이지 거의 완벽한 제품이나 서비스조차도 아주 평범한 제품이나 서비스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이제 제품이나 서비스의 ‘퀄리티’는 좋을 경우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요소가 아니라, 구릴 경우 소비자들을 이탈하게 만드는 요소다.

어떻게 보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행복해진 거다. 어딜 가도 우리는 그 분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기능, 서비스, 혹은 그림 실력 등을 거의 완벽에 가까운 퀄리티로 누릴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워낙에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그 좋은 퀄리티의 제품과 서비스들은 갈수록 낮은 가격에 제공되고 있다. 와…세상 엄청 좋아졌네?

문제는 우리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하다는 거다. 아니, 도대체가 아무리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도 남는 게 없다. 다 잘하니까. 힘들게 쌓아올린 ‘본질’의 힘만으로는 생존할 수가 없다. ‘본질’이 ‘핵심’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본질’을 외면했다간 바로 나가리…슬프게 벌어서 행복하게 쓰는 세상이다. 근데 벌이가 슬퍼서 행복하게 쓸 기회가 없어요

상향평준화의 시대에서는, ‘즉각적인 경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아니고서는 차별화가 어렵다. 아니 그런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도대체 뭐냐고…도대체 사람들은 수많은 완벽한 것들 사이에서 무슨 기준으로 선택을 하냐고…완벽한 제품과 서비스는 다른 완벽한 서비스들과 어떤 식으로 차별화될 수 있냐고…

모른다 ㅋㅋㅋ실제로 차별화된 무언가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ㅋㅋㅋ그렇지만 어렴풋한 가설은 있다. ‘사회적 아이덴티티 형성’이다. 예를 들면, 신촌에서 밥 먹으면 ‘대학생’이 되고, 연희동에서 밥 먹으면 ‘트렌드 세터’가 된다. 똑같은 옷이라도, 어떤 라벨을 붙이느냐에 따라 가격은 세 배 차이가 나고, 판매량은 삼십 배 차이가 난다. (그러면 매출은 구십 배 차이가 나고, 직원들 월급은 세 배 차이가 난다. 나머진 ‘리스크를 감수하신’ 사장 각하와 주주 폐하 꺼…그러니 억울하면 창업을 하시고, 엑싯한 다음 VC 하세요…)

내 생각에, 이 ‘사회적 아이덴티티’를 대규모 단위에서 비즈니스적으로 승화하려면 두 가지를 자극해야 하는 것 같다. 허영심이랑 관음증이다. 허영심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관음증은 그렇게 해서 구매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퍼지는 growth hacker 역할을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허영심이랑 관음증을 노리고 기획하는 비즈니스는 보통 천박하기 쉽다. 아니면 곧 천박해지거나. (물론 천박한 비즈니스로 성공해도 영웅 되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 영웅 되고 싶으면 가치고 뭐고 돈이나 버세요…)

그럼 도대체 사회에 ‘일정 규모 이상의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면서, 비즈니스적으로도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실리콘밸리밖엔 없다!는 아니고…아니, 그런데 또 맞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실리콘밸리 같이 특수한 문화를 가진 집단 중에는, 과시적인 의미의 사회적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정말로 가치 있는 제품 혹은 서비스에 프리미엄을 지불할 가치관과 경제력을 가진 소비자군이 형성되어 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수한 집단이 사회에서 롤 모델로 여겨지기까지 하면, 바로 여기다. 여기서 시작해서 퍼져 나가면 된다. 그러면 ‘가치있는 비전’을 ‘핵심’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가능해진다.

탐스를 예로 들면 좋을 듯하다. 초기의 탐스는 가치있는 소비에 공감하는 사람들한테 팔렸다. 그러다가 그러한 소비자들 중에 스칼렛 요한슨이나 키이라 나이틀리 같은 헐리우드 언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언니들께선 파파라치 컷에 간지나게 찍혀주셨다. 그 다음에는 뭐…이제 관음증과 허영심 차례다. 모여라 전세계의 힙스터들이여!

정리하면, 적어도 제품과 서비스의 영역에서 사회는 급격하게 ‘상향평준화’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제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은 어떤 비즈니스를 성공하게 만드는 ‘핵심’이 아니게 됐다. ‘핵심’은 고객에게 매력적인 ‘사회적 아이덴티티’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허영심을 자극하는 이 ‘사회적 아이덴티티’는, 관음증을 타고 퍼진다. 그러나 그만큼 천박해지기도 쉽다. 천박함을 피하려면, 초기 고객들이 ‘가치 있는 사회적 아이덴티티’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고객군들의 롤 모델이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결론은 말은 쉽고 실행은 어렵다

쓰고보니, 본질이며 핵심이며…용어 한번 자의적이네 ㅋㅋㅋ본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텔로스랑 비스무리하게 이해하면 될라나? 핵심은 뭐지? 어…?

상향평준화의 시대에서 비즈니스질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