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물러남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습니다

작년 12월 5일, 리영희 선생이 세상을 떴습니다. 요즘같은 시기에 선생같이 큰 기둥이 되어줄 수 있는 참된 스승의 부재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선생을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등 우리 아버지 세대들을 일깨운 책들로 기억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에게 선생은 지난 2006년의 ‘절필 선언’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고3이었던 나는, 선생의 절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만,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선생의 절필은 나에게 숭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냉철하게 바라볼 줄 아는 치열한 자기 반성의 결과였습니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식으로는 시대를 초월할 수 없습니다. 뉴턴은 당시에는 최고의 물리학자였을지 몰라도, 오늘날의 평범한 이공계열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뉴턴보다 이 세계의 물리적 법칙에 대해 훨씬 많은 양의 지식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뉴턴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가졌던 해박한 지식 때문이 아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탐구에의 끈질긴 집념 때문입니다. 절필 선언이 없었다고 해도 리영희 선생은 신념을 굽히지 않은 대쪽같은 선비로서 우리에게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필 선언으로 리영희 선생은 훌륭한 지식인 이상의,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정신으로 그 격을 높입니다.

리영희 선생은 절필 선언과 함께 소장하고 있던 책도 모두 기증하였지만, 불교 위주의 종교 관련 서적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백낙청 씨는 ‘당신이 계발하지 못한 면을 가꾸어 보겠다는 선생의 의지에 만세를 부른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쓸 데가 없을진 모르지만, 배움 그 자체의 기쁨을 알고 스스로의 완성을 위해 평생을 매진하는 선생의 자세는 물러날 줄 아는 현명함과 더불어 우러를 만한 것입니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라고 했고,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지요. 너무나 유명해 인용하는 것조차 민망한 말입니다. 나는 리영희 선생이야말로 공자가 그토록 말하는 군자의 덕목을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자가 리영희 선생을 만났으면 어땠을까요. 리영희 선생은 자신의 시대가 끝난 것을 알았고, (물론 그럼으로써 더 큰 명예를 얻었지만) 영광을 뒤로한 채 물러날 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았으며,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은 물러남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