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바의 숫자

장안의 화제, <사피엔스>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알고 지내며 효과적으로 뒷담화를 나눌 수 있는 보통 사람은 거의 없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52페이지.

‘던바의 숫자’가 떠올랐다. ‘던바의 숫자’는 옥스포드 대학의 로빈 던바 교수가 1992년에 제안한 개념이다.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는 평균적으로 150명 정도라는 게 주된 내용. 여기서 ‘친밀한 관계’란 급만남에도 어색하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를 말한다. 그래도 에너지가 넘치면 230명까지는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에너지가 없는 사람의 경우엔 100명 정도가 한계라고.

실제로 대부분의 자연 부락의 규모는 150명 정도였다. 카이스트의 정하웅 교수 팀이 2005년에 싸이월드에서 40만 명의 사용자들이 주고받은 일촌평을 분석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11년 전만 해도 우리 모두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싸이월드를 하고 있었구나. 아무튼, ‘던바의 숫자’에 따르면 아무리 페이스북 친구가 많아도 결국 우리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150명 정도다.

그래서 친구 수를 150명으로 제한한 SNS 서비스가 나오기도 했다. 작년에 카카오에 인수된 패스(Path)가 그 예. 실제로 창업 당시 던바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그나저나 카카오 입장에서는 송지호 부사장을 대표로 앉혔을 정도니까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트래픽이 꾸준히 성장중이라던가 수익화의 길이 보인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딱히 나오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하기야 아직 인수한지 1년도 안 됐으니까 뭐.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던바의 숫자’라는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는 행위가 필요한데, 페북이나 카톡 등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적은 에너지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심화하는 데 필요한 소통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기술의 도움을 받아 보다 많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할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요즘 같이 바쁘게 사는 세상에선 가까운 사람이 150명이 아니라 15명만 돼도 감사할 지경 아닌가. 그렇지만 조직적인 관점에선 매우 흥미로울 수도 있어 보인다. 공동체가 효과적으로 협업을 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구성원들의 관계는 사실 그렇게까지 깊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같은 회사라고 더 잘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모튼 한센 하버드 경영대 교수가 쓴 <협업>에도 이런 얘기가 나왔었다. 한센은 좋은 협업에 필요한 건 강한 유대(strong ties)가 아니라 약한 유대(weak ties)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으로 ‘약한 유대’를 맺고 유지하기가 쉬워졌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전보다 조직의 규모를 크게 가져가면서도 협업의 효율은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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