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인 사회 – 에른스트 피셔의 ‘과학한다는 것’을 읽고

9월에 트레바리34에서 함께 읽는 책은 에른스트 피셔의 <과학한다는 것>. 교양인으로서 알아야 할 과학을 다룬 책이다. 굵직굵직한 건 대충 다 다루고 있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분자생물학, 진화론 등등.

재미있다. 원래 과학 책을 좋아한다. 신기해서 재미있고, 이렇게 신기한 걸 알아내는 인간이 대단해서 뿌듯하다.

과학은 용감하다. 과학의 도약은 당연한 것들에 대한 도전에서부터 시작되곤 했다. 갈릴레오가 그랬고,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익숙한 것들에 대해 과감히 결별을 고하는 것은 보통 두려운 일이 아니다. 당연한 것들은 사랑을 받고 있기 마련이다. 당연한 것들에 도전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과 사회와 생각들과도 맞서야 함을 의미한다.

과학은 끈기있다. 과학이 다다르고자 하는 곳은 참 멀고도 먼 곳에 있다. 어쩌면 과학이 그 곳에 다다르는 것보다 인간이 멸종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쓸데없는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지레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저 꾸역꾸역 뭔갈 계속해 나갈 뿐이다. 이따금씩 무언가를 쌓아 가면서, 그리고 그 순간의 환희를 즐겨 가면서.

무엇보다 과학은 겸손하다. 항상 틀릴 준비가 되어 있다. 나중에 가서 더 옳은 이론이 나왔다고 해서 과거의 도전이 무의미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위대함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과학의 세 덕목 – 용기, 끈기, 겸손 – 은 이상적인 과학의 모습일 뿐, 현실에서 과학과 과학계, 그리고 과학자들의 모습은 꽤나 다를 수 있다. 과학자라는 직업이 그 사람의 과학적인 태도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보다 과학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보다 용기를 내서 삐딱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보다 끈기있게 지성과 예술과 도덕과 사랑을 쌓아 나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보다 겸손하게 서로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과학적인 태도가 우리 사회에 보다 넓고 깊게 퍼지게 되면, 근거 없이 억지만 부려도 각종 정치 현안이 해결되는 일도 덜할 거다. 어이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일도 덜할 거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수도 없이 공유되며 퍼지는 일도 없을 거다.

이러한 사회는 훌륭한 논문이 많이 나오고, 유명한 연구자가 많이 배출되고, 그래서 노벨상을 많이 탄다고 해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콘서트> <온도계의 철학> <과학하고 앉아있네> 등을 펴낸 동아시아 출판사의 한성봉 대표님도 최근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과학의 대중화란 모든 사람들이 주기율표를 외고, 물리학의 법칙들에 능통하고, 빅뱅과 웜홀을 그리게 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우주에 대한 합리적 호기심과 논리적 유추, 그리고 세상만사에 대한 과학적 입장과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시도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으로 지금 떠오르는 것은 세 가지 정도다.

먼저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처럼 과학에 대한 책 읽기. 오늘날의 놀라운 현대과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성취를 이룩해냈는지 그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과학적인 태도의 중요성도 조금은 스며들 여지가 있으리라 믿는다. 예전에 독토에서 ‘과학적 회의주의’를 다룬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함께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때 몇몇 사람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게 기억난다.

실험을 통해 과학적 방법론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황승식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신 적이 있다. “학습이라는 단어를 풀어서 이해하면 배우고 익힌다는 뜻인데요, 이론을 배워놓고 실험을 통해 익히지 않으면 과학의 정수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마지막은 언제나 그렇듯 기승전독서모임. 적당히 개방적이고 적당히 치열하며 무엇보다 적당히 지적인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면, 과학적인 소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함부로 삐딱했다가는 순식간에 피곤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함부로 끈덕졌다가는 미련한 사람이 되어 버리며, 함부로 겸손했다가는 호구가 되어 버리기 쉬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트레바리가 그렇지 않을 수 있는 터전으로 커나갈 수 있길 바란다.

좋은 책을 골라주신 발제자 김태호 선생님께 감사를!

과학적인 사회 – 에른스트 피셔의 ‘과학한다는 것’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