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원 – 이별이란 없는 거야

이별이란 생각으로 울지마

그건 너의 작은 착각일뿐야

가면 어딜 가니 좁은 이 하늘 아래

한동안 둘이 서로 멀리 있는 걸텐데

웃으며 나를 보내줘

언젠가 만나겠지 새로운 모습으로

이별이란 말은 없는거야 이 좁은 하늘 아랜

안녕이란 말은 없는거야 이 세상 떠나기 전엔

 

이야…가사가 정말 주옥같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데, 좋은 노래를 듣자.

Advertisements
최성원 – 이별이란 없는 거야

여자들이 늦게까지 놀아야 하는 이유

여자들이 지금보다 다른 남자들과 훨씬 더 많이, 자주, 그리고 찐하게 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친구/와이프가 있는 남자들도 다른 여자들이랑 친하게 안 지내면 되지 않느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건 하향평준화라고 본다. 서로가 서로를 가두는 거다. 가뜩이나 다양한 인간관계로부터 유리되는 요즘 세상에서, 나갈 수 있는 자리의 조건을 더 엄격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자살행위다. 서로를 더 외롭게, 그래서 서로를 더 상호 의존적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보다 더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각자의 삶은 좀 더 다채로울 수 있어야 한다.

질투라는 감정이, 연인 혹은 배우자에 대한 소유욕이, 지금보다는 좀 더 부정적으로 여겨졌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 꺼’다. ‘난 니꺼, 넌 내꺼’ 같은 식의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타인에 대한 주제넘은 소유욕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소유욕이 좋은 예다. 상대가 주체적인 개인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누가 나에 대해 월권행위를 하려 들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부모일지라도, 직장 상사일지라도, 연인 혹은 배우자일지라도.

여자들이 막 나다닐 수 있게 되면,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 그녀들의 커리어도 탄력을 받기 쉬워질 거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역량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회사 밖 네트워크는 큰 공헌을 한다. 주변에서 나름 성공하고 있다는 사람들 중, 좋은 네트워크의 뒷받침을 안 받은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한국같이 바쁜 사회에서, 그러려면 늦게까지 놀 수 있어야 한다. 늦어서 안 돼, 남자가 있어서 안 돼, 이러저러해서 안 되면 여자들에게는 너무 기회가 없다.

그리고 그래야 더 좋은 남자들을 만날 수 있다. 내 남친, 내 남편보다 훨씬 좋은 남자들이 널려 있다는 걸 알아야 된다. 그래야 여자들도 아쉽지 않아질 거고, 그래야 남자들도 정신 차리고 더 좋은 연인, 더 좋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거다. 사실 연인 혹은 배우자에 대한 지나친 구속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그만큼 부족해서일 가능성도 크다. 다른 남자를 만나도 여전히 사랑받을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열낼 필요는 없지 싶다.

 

최근에 성평등 관련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서 일기장에 끄적이다 보니 쓰게 된 글. 딱히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ㅋㅋ

 

페이스북에도 이 글을 올렸는데, 예상치 못하게 많은 분들이 가열차게 의견을 붙여주셨네요. 이대로 두긴 아까워서 링크 올립니다. 특히 권성민님과의 대화 내용이 볼 만해요!

여자들이 늦게까지 놀아야 하는 이유

돈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 은퇴 나이는 53세입니다. 가장 오래 다닌 회사에서 퇴사하는 나이는 평균 49세. 자회사 대표로 가거나 다른 회사 임원, 고문 등으로 가는 꿈 같은 커리어를 밟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테니까, 대부분은 49세부터 약 4년 동안은 눈높이를 확 낮추고 계약직 등을 전전해야 할 겁니다. 53세쯤 수십 년에 걸친 월급쟁이 생활을 ‘어쩔 수 없이’ 마무리지을 테구요.

다행히 최근까지 은퇴한 60대 초중반생들은 젊은 시절에 어느 정도의 재산을 모아둘 수 있었던 사람들이 제법 되는 편입니다. 문제는 몇년 후의 50대들과 40대 후반들, 그러니까 50년대 후반생 이전의 아줌마 아저씨들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여태껏 아파트값 상승을 통해 자산을 축적해왔는데, 이 혜택을 제대로 못 누리기 시작한 세대들이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하우스푸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

그리고 이 흐름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 그러니까 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 이르면, 상황은 한층 암담해 보입니다. 아마 우리들은 높은 확률로 50은커녕 40대 중반까지 일하기도 힘들 겁니다. 그때까지 돈을 모아두기도 힘들 거구요. 아무리 열심히 저축하고 적금 붓고 해봐야 세금 떼고 물가상승률 고려하면 실제로 투자수익률은 1%를 넘기기도 힘들 거고, 코스피가 무한 상승해서 인덱스 펀드에만 투자해도 쫙쫙 올라가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부동산 투자를 할 만한 밑천을 구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설령 어떻게 모아서 담보대출 끼고 집 한채 질러봐야 만족할만큼 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탓은 아닙니다. 한국이 드디어 먹고살만해져서(!) 저성장 궤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가난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처럼 다같이 험블하면 또 모를까, 티비 보고 페북 보고 인스타 보면 맨날 훈남훈녀들이 간지템 착용하고 핫플레이스를 투어해 주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도 아웃라이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론입니다. 안타깝게도 여간해선 불가능할 것 같은 결론이기도 하지만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야 많이 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욕심이 다르니 기준을 마련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50살 때 순자산 10억 정도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면 그럭저럭 기깔날 수준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10억 정도면 수익형 부동산을 사거나 자산운용사에게 돈을 맡길 수 있는 금액입니다. 후하게 쳐서 세후수익률 6% 정도 먹는다고 가정하면, 월 500만원 정도의 자본소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월세도 내야 하고 해서 아주 호화롭게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늘그막에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할 필요 없을 정도는 충분히 됩니다.

(상속/증여, 복권, 그리고 사업 등의 ‘대박’을 논외로 하고) 10억을 모으려면, 경제활동을 하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월 3백만원씩 저축하면 됩니다. 월 3백만원씩 20년동안 연평균 3%의 수익률로 투자하면 10억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을 가지고 50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결혼이니, 육아니, 의료비니 해서 모아둔 돈을 쓰거나 저축을 멈추면 안 되는 건 함정. 그리고 요즘 세상에 평범한 개인이 연평균 3%씩 수익률 내기 어렵다는 것도 함정. 20년동안 월급 받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건 더 함정.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달에 2백만원은 쓰고 살아야 할 것 아녀요. 월세도 내야 하고, 가끔은 데이트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쯤 제주도 정도는 다녀와야죠. 그런데 그러려면 한달에 가처분소득이 5백만원은 되어야 합니다. 2016년 기준으로 한달에 세후 5백만원을 받는 연봉은 7,300만원. 연봉 7천짜리 직장인이 열심히 아껴 써야 나이 들어서도 평생 아껴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열심히 해서 부자가 되어 보이겠다’는 포부는, 진짜 어마어마한 경제적 성취를 일구어 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청년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빠른 속도로 몸값을 올려서 적어도 30대 중반 즈음에는 억대 연봉을 받아야지만 목표인 10억 혹은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연봉 1억이 되더라도 월 실수령액은 7백만원을 넘기지 못합니다. 30대 초반에 미처 다하지 못한 저축액을 메우는 것도 벅찰 겁니다.

오늘날의 청년이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꽤 조급해져야 합니다. ‘나는 대기만성형일 거야’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사회는 대기만성형 인재에게 기회를 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인력들은 점점 더 고급화되고 있지만 고급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뭐하러 나이 먹고 이제서야 좀 잘해볼 것 같은 사람한테 기회를 주겠어요. 어지간해선 꼭 30대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내야 합니다. 안그래도 짧은 청춘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그냥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헉, 쓰고 보니 너무 비관적인 글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어쩌면 우리가 삶의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 쉬운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에서 ‘여기만 넘자’가 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의 속이 아주 많이 편해질 거고, 그러면 남은 건 행복이고 지성이고 예술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관련글)

이육헌 님의 발제로 트레바리 34에서 2월에 함께 읽는 책,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을 읽고 쓴 글입니다.

돈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전세계 화폐 총량

<사피엔스> 255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주화와 지폐(은행권)는 화폐의 유형으로서는 드문 것이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약 60조 달러지만 주화와 지폐의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 돈의 90퍼센트 이상, 우리 계좌에 나타나는 50조 달러 이상의 액수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60조 달러? 에게, 겨우 이것밖에 안 되나?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인 알파벳(구글)과 애플의 시가총액이 5,500억 달러 정도다. 아무리 잘나가는 회사여도 그렇지, 회사 하나가 전세계에서 돌아다니는 돈의 1%짜리라는 건 좀 이상하다. 심지어 올해 안으로 상장될지도 모른다는 아람코의 가치는 잘하면 10조 달러는 된다는데 말이다.

당장 세계 최대의 주식거래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만 봐도, 20조 달러를 살짝 밑도는 수준이다. 나스닥, 런런, 도쿄는 각각 5조 달러 규모고, 상하이가 4조 달러, 홍콩, 유로넥스트, 선전이 3조 달러 정도. 서울은 1.2조 달러로 15위다. 혹시나 해서 1위부터 15위까지 더해 보니까 2015년 기준으로 딱 60조 달러 정도다. 전세계 다 합치면 70조 달러.

응? 그럼 60조 달러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온 거지? 혹시 번역이 잘못되었나 싶어 찾아보니 번역에는 문제가 없다. 그래서 더 찾아봤더니 ‘broad money’라는 개념이 있다. 경제학에서는 광의통화 혹은 m2라고도 부른다. 지폐랑 동전에다가 은행 구좌 잔고, 만기 2년 미만의 금융상품 등 현금화가 쉽고 빠른 돈을 합쳐놓은 액수를 말한다.

아마 <사피엔스>에서 언급한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이 broad money를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가장 최근에 집계된 world broad money의 규모는 약 81조 달러다. <사피엔스>가 2011년에 나왔으니, 그새 21조 달러 정도 늘어났나보다.

재미있는 건, ‘주화와 동전’은 현재 5조 달러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발 하라리가 책을 쓸 때와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뜻. 그러고 보면 일단 나조차도 5년 전보다 동전은 물론 지폐를 훨씬 덜 쓰고 있다. 사회의 개념화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구나.

그 외에도 흥미로운 통계 자료들이 꽤 많다. 전세계에 있는 비트코인을 합치면 50억 달러. 전세계에 있는 금과 은은 각각 7.8조 달러와 140억 달러. 미국 국채의 총합은 4.5조 달러.

뭔가 괜히 무시무시한 통계도 있다. 전세계 채무의 양이다. 199조 달러다. 이 중 30% 가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생겼다고 한다. 전체 채무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건 나라 빚이다. 60조 달러 정도. 4대 채무국인 미국이 17조 달러, 유럽이 16조 달러, 일본이 12조 달러, 중국이 4조 달러 어치의 돈을 갚아 나가는 중이다. 국가 채무 1,200조에 빛나는 한국도 한국이지만, 세계는 세계를 팔아도 반도 갚지 못하는 빚을 지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레버리지 세상!

제일 규모가 큰 숫자는 파생상품(옵션, 선물, 스왑 등) 관련 통계에서 나온다. 전세계 파생상품 가치의 총합은 무려 630조 달러에서 1경2천조 달러. 이쯤 되니까 괜히 세계 경제가 꽤나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빅 숏>을 읽은 다음이라 그런지 이른바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안전장치에 대한 불신이 커진 요즘이라 더 그런가보다.

하여간에 <사피엔스> 재밌는 책이다. 전체적인 흐름도 재밌고, 이렇게 부분 부분에 꽂혀서 각종 뻘글을 써내게 되기도 하고. 두꺼워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두번일겅 세번일겅!

전세계 화폐 총량

설날의 감사 인사

막연히 ‘누군가 독서 모임 운영을 업으로 할 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즐길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으로 지인 열 명을 모아 유료 독서모임을 열어본 게 작년 5월이었습니다. 6월에는 모임이 두 개가 됐고, 7월에는 세 개가 됐습니다. 8월 한 달간 열심히 준비해 9월부터는 네 개의 모임으로 시즌제를 시작했고, 10월에는 아지트를 계약했습니다. 11월에는 인테리어에 열을 올렸고, 12월에 아지트를 오픈했습니다. 1월에는 새롭게 다섯 개의 버티컬 클럽과 함께 두 번째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어찌저찌 해서 이제는 나름 월세도 내고, 존경하는 이육헌에게 월급도 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에는 드디어 사랑스러운 직원 한 분도 모실 예정이고, 다음 시즌에는 이번 시즌 대비 최소 50% 이상 규모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정신없이 바쁘긴 하지만, 불과 반 년 전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_MG_4280
첫 번째 트레바리. 정말 무턱대고 시작한 모임이었다. 2월이면 어언 10회째를 맞게 되는 트레바리 36.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최종욱형 덕분에 회사에서 나올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정혜승님 덕분에 아지트가 생기기 전, 소나무장학재단과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독서모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홍진채형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다달이 빚을 갚고 있었을 거고, 강민구형이 아니었으면 아지트는 절대 이런 모습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이상훈형 덕분에 이번 시즌에 성공적으로 다섯 개의 클럽을 열 수 있었고, 이정모, 황승식, 강정수, 성영아, 도락주님 덕분에 당당하게 어디 가서 ‘트레바리의 콘텐츠는 국내 최고 수준입니다’라고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지트를 꾸미던 때가 생각납니다. 십수 명의 트레바리 멤버들이 옷 버려 가며 페인트칠을 도와줬고, 윤정임과 이인묵님, 송아름님, 홍순상님 등이 각종 집기들을 선물해 줬습니다. 김석원형은 많은 분들이 아지트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조명을 달아줬습니다. 블라인드도 석원형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함께 만든 셈입니다. 어느덧 트레바리는 170여분의 멤버와 함께하게 됐습니다.

IMG_6612
아지트 페인트 칠하던 날. (왼쪽부터) 민석환, 남재현, 문재윤, 김석원, 박현종, 강민구, 윤수영.
트레바리는 트레바리가 만들어 왔고,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트레바리에 제가 기여하는 바가 지금보다 많아질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누군가가 돈을 내고 시간을 맡긴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무거운 일인지, 갈수록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 인사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너무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시나 실수로 한두 분을 깜빡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고, 서투른 글솜씨 때문에 제대로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까봐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설을 맞아 용기를 내 봅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넘나 진지해서 살짝 민망한 것!

설날의 감사 인사

던바의 숫자

장안의 화제, <사피엔스>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알고 지내며 효과적으로 뒷담화를 나눌 수 있는 보통 사람은 거의 없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52페이지.

‘던바의 숫자’가 떠올랐다. ‘던바의 숫자’는 옥스포드 대학의 로빈 던바 교수가 1992년에 제안한 개념이다.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는 평균적으로 150명 정도라는 게 주된 내용. 여기서 ‘친밀한 관계’란 급만남에도 어색하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를 말한다. 그래도 에너지가 넘치면 230명까지는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에너지가 없는 사람의 경우엔 100명 정도가 한계라고.

실제로 대부분의 자연 부락의 규모는 150명 정도였다. 카이스트의 정하웅 교수 팀이 2005년에 싸이월드에서 40만 명의 사용자들이 주고받은 일촌평을 분석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11년 전만 해도 우리 모두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싸이월드를 하고 있었구나. 아무튼, ‘던바의 숫자’에 따르면 아무리 페이스북 친구가 많아도 결국 우리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150명 정도다.

그래서 친구 수를 150명으로 제한한 SNS 서비스가 나오기도 했다. 작년에 카카오에 인수된 패스(Path)가 그 예. 실제로 창업 당시 던바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그나저나 카카오 입장에서는 송지호 부사장을 대표로 앉혔을 정도니까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트래픽이 꾸준히 성장중이라던가 수익화의 길이 보인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딱히 나오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하기야 아직 인수한지 1년도 안 됐으니까 뭐.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던바의 숫자’라는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는 행위가 필요한데, 페북이나 카톡 등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적은 에너지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심화하는 데 필요한 소통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기술의 도움을 받아 보다 많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할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요즘 같이 바쁘게 사는 세상에선 가까운 사람이 150명이 아니라 15명만 돼도 감사할 지경 아닌가. 그렇지만 조직적인 관점에선 매우 흥미로울 수도 있어 보인다. 공동체가 효과적으로 협업을 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구성원들의 관계는 사실 그렇게까지 깊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같은 회사라고 더 잘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모튼 한센 하버드 경영대 교수가 쓴 <협업>에도 이런 얘기가 나왔었다. 한센은 좋은 협업에 필요한 건 강한 유대(strong ties)가 아니라 약한 유대(weak ties)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으로 ‘약한 유대’를 맺고 유지하기가 쉬워졌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전보다 조직의 규모를 크게 가져가면서도 협업의 효율은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던바의 숫자

영화 ‘빅 쇼트’

1월에 트레바리 36에서는 <빅 숏>을 함께 읽었다. 마침 영화로도 개봉한 김에 같이 보러 갔다 왔다. 영하 십팔도를 뚫고!

주인공들이 사악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빅 쇼트’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에 베팅해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면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는 ‘어떻게 하면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나도 이 사람들처럼 대박을 터뜨려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넘나 간사한 것! 그래, 나뿐만 아니라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이렇겠지. 인간은 참 나약하다.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더 나은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줬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엔 좀 씁쓸하긴 했지만.

[씨네21 리뷰] – <빅 쇼트>를 본 당신에게 추천하는 영화 3편

영화 ‘빅 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