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미루지 않고 정면돌파한다는 것,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를 읽고

1.

“사람이든 집단이든 타산지석으로 교훈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은 스스로 고통을 겪고 나서야 배우는 법이다. (……) 그렇다면 일본이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웅번들이 서구 세력과의 무력 충돌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 이들 전쟁으로부터 3년 뒤인 1866년에 프랑스의 침략을 물리친 조선이 쇄국정책을 강화한 결과 국제 정세 변화에 더욱 둔감해진 것을 생각하면, ‘잘 진 것은 잘못 이긴 것보다 낫다’는 격언이 떠오른다.”

김시덕 교수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다.

2.

어떤 갈등이든 조짐이 보이는 즉시 터뜨리고 봐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낼 때의 그 불편함이 싫어서 묵혀 둬봤자, 문제는 점점 커지면 커졌지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어차피 헤어질 거라면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낫고, 어차피 계속 볼 거라면 속시원하게 한바탕 하는 게 낫다. 피할 수 있는 걸 피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어떤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을 택했을 때 후회해본 적이 없다. 후회는 언제나 ‘하지 않음’ 또는 ‘나중에’의 몫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최악의 방법 중 하나가 ‘유예’다. 임시방편으로 일단 때우는 거. 일단 지금만 좀 넘기고 보는 거.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파국을 유예하고 나면,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온다. 언제 이런 문제가 있었냐는 듯. 마치 해결된 것 같다. 그렇지만 해결하지 않고 일단 묻어둔 문제는 분명 다시 나타난다. 더 심각해진 형태로 나타난다. 애초에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였으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더 심각해지는 문제가 아니었으면, ‘파국’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일도 없다.

문제를 미룰 때만 해도, 우리는 ‘일단 이렇게 시간을 확보해 둔 다음 충분히 대비하고 성장해 놓으면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람이든 집단이든 고통을 겪고 나서야 배우는 법이다.” 단순히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식하는 것으로는 변할 수 없다. 본인이 변하지 않았는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있나.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내가 내린 선택이 과연 ‘정면돌파’인지 아니면 ‘유예’인지를 아는 방법 중 하나는,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떠들어보는 것이다.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기에 께름칙한 게 있다면, 그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 덮어둔 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해결된 게 아니라 해결하는 중만 돼도,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당당하게 발언할 수 있다.

3.

작은 실패는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일 수 있다. 혹은 해결해 나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반대로 작은 승리는 때로는 진짜 큰 문제를 애써 무시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진통제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승리가 진짜 승리인지, 아니면 눈 가리고 아웅의 수단인지를 아는 방법은, 우리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이 가능한지 테스트해 보는 것이다.

조선의 승리가 유예였던 이유는, 이후 서구 세력의 강대함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인들도 두 차례 양요에서의 승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정말로 서구 세력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면, 이런 위협이 있고 저런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어야지.

반대로 일본의 패배가 패배가 아니었던 이유는, 계속해서 그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오히려 장려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렇게 해결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저렇게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얘기가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일본은 문제를 마주했고, 정면 돌파하는 중이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조선의 의사결정은 미스의 연속이었다. 반면 일본의 의사결정은 개선과 누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결정들의 차이가 백 년 동안 쌓이고 난 다음의 결과는 빌어먹을 일본의 식민 통치였다.

요즘 한국 사회 곳곳에서 애초에 발언 자체를 금지하려는 태도가 보인다. 아마도 본인들이 내리는 선택들이 각종 문제들을 덮어놓는 데서 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테다. 그분들이 한번이라도 이렇게 ‘유예된 파국’이 나중에 어떤 세상을 만들어낼지 생각해 주시면 좋겠지만, “사람이든 집단이든 고통을 겪고 나서야 배우는 법”이기 때문에, 어쩌면 다 같이 빨리 X돼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4.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트레바리 36에서 12월에 함께 읽는 책이다. 발제자는 이인묵님. 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진 뻘글을 쓴 것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일단 큰 얘기를 하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https://goo.gl/fWol8m) 최근에 워낙 생각 없이 살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매달 꼬박꼬박 세 권의 책을 읽고 세 편의 독후감을 써 내다 보니, 더 이상 남은 콘텐츠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빈 곳간에서 보물이 나올 리가.

그래서 발제자인 인묵님께 SOS를 쳤었다. ‘주제 잡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랬더니 인묵님이 친절하게 세 가지 옵션을 던져 주셨다. 1) 만주 혹은 북한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2) 오늘날 한국 사회의 사고 방식의 한가운데에는 중국이 있을까, 아니면 미국이 있을까. 3) 한국 사회는 ‘텍스트’를 얼마나 신뢰할까.

아아아…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던져주시다니요. 질문 하나씩을 잡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봤는데, 중학생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뻔한 이야기 말고는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포기하고 이런 뻘글을 썼다. (인묵님 죄송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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