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것보다 구린 것, 그리고 러덜리스

어느샌가, ‘뻔한’ 건 ‘구린’ 거랑 거의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쩌면, 진짜 ‘구린’ 건 어지간히 ‘참신’하지 않으면 도저히 ‘신선함’을 못 느끼게 된 우리일지도 모른다.

어린애들은 매일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 나간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고, 계속 즐거워할 줄 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 연인, 친구, 동료들은 매일 같은 얼굴 속에서도 끊임없이 감사할 점들을 찾아 나갈 줄 안다. 켜켜이 쌓이는 추억들을 만들어 나갈 줄 안다.

물론 콘텐츠가 좋을수록 멋진 경험을 할 확률은 높아진다. 그렇지만 콘텐츠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아마 어떠한 콘텐츠를 접하더라도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관찰력과 애정일 테다.

매일 매일의 뻔한 일상 속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면, 분명 우리는 우리가 생각보다 다채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깊게 파내려가다 보면, 언젠간 우리도 어린아이의 설렘과 노인의 견고함을 아울러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아마 ‘현명함’이란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라 믿는다.

얼마 전, 너무 ‘뻔했던’ 영화 ‘러덜리스’를 보고 든 생각. 그래도 영화엔 밴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로망을 자극할 만한 장면들은 빠지지 않고 다 들어가 있어서,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면 가볍게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난 러덜리스를 보고 노래방에 가서 위저랑 그린데이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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