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정의’를 읽고 든 생각 9가지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를 읽었다.

1.

<시적 정의>를 읽다 보면, 마사 누스바움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깊은 사고를 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정도로 깊게 생각할 줄 아는 내 주위의 보통 사람들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한다.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능력과, 깊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능력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 그래서, 누가 말하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 갖는 작은 선의는 훨씬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개인적 선의보다 선하기 때문이다.

2.

풍부한 생각거리들을 가져다 주는 책이다. 그래서 좋은 책이다.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 거고, 이러한 방식으로 책이 던지는 질문이 우리의 삶과 사회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다. 즉각적인 삐딱함이나 불편함 때문에 이 책이 퍼붓는 생각거리들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외면해 버리면 안 된다.

3.

동시에 나쁜 책이다. 불친절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상당한 배경 지식을 요구한다. 우선 디킨스의 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시적 정의>에 몰입하기 어렵다. (역으로 근성을 가지고 읽으면 소설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ㅋㅋ)

윤리/정치/철학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뒤따르지 않아도 몰입하기 어려울 듯하다. 예를 들어 ‘좋음’이라던가 ‘덕’ 혹은 ‘탁월함’ 등으로 번역되고 있는 Good, arete, virtue, excellence 등의 용어들이 가진 뉘앙스를 포착해내지 못하면, 단락 사이사이에 함축된 논의들을 놓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아무 내용도 없는 문장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뜻.

그래서 말인데, 표지나 띠지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 혹은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타겟을 제한하는 마케팅이 실제 판매고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타겟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타겟에 해당하기 때문에 구매 욕구가 높아질 거고, 타겟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겟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구매 욕구가 높아질 수도 있으니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항상 ‘지식의 저주’를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지식은 퍼져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그럴라면 자신의 지식을 ‘퍼지면 좋을’ 지식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퍼지기 쉬운’ 지식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한 거다.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굳이 자신의 지식을 ‘퍼지기 쉽도록’ 디자인하지 않아도 됐었다. 지식 산업 종사자로서의 지위 자체가 권위를 만들어줘 왔기 때문에. 예전에는 교수님이 헛소리(?)를 해도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뭔가 있을 거야’라고 했다 하지 않나.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다. 물론 이게 반드시 ‘진보’냐 하면 또 아닐 수도 있지만. ‘안정성’이 ‘경쟁적 혁신’으로 대체되는 건 양날의 칼 같은 거니까.

참, 이 책 문장도 구리다. 원문이 구린 건이 번역이 구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건조한 게 더 좋다는 건 아니지만, 수사들이 지나치게 현란해서 흐르듯이 읽기 어렵다.

4.

어쩌면 누스바움은 경제학이나 과학에 대해 충분히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특히 과학의 교조적인 측면을 비판하는 부분을 읽을 때 그렇게 느꼈다. 과학의 본질은 회의적인 데 있는 거 아닌가. 과학처럼 ‘교조적’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 분야도 없다. 과학’계’라는 표현을 썼으면 이야기는 좀 달라졌겠지만.

요즘 같이 고도로 복잡하게 조직된 세상에서, 제너럴리스트로서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발언을 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야 하는 건 맞다. 넓은 시야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없으면 ‘공공’이나 ‘사회’는 점점 정글이 될 테니까. 사회는 제너럴리스트에게 어느 정도의 발언권을 주어야 하는가. 제너럴리스트의 중요성은 제너럴리스트이기 때문에 동반할 수밖에 없는 무례함을 어디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가.

5.

<시적 정의>를 읽다 보면, ‘자유’가 왜 그토록 중요한 가치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스바움은 ‘문학’이 현재의 ‘공공’이 강요하는 천편일률적인 삶의 양식으로부터 ‘개인’을 구원해줄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한다. 맞는 말이다. 동의한다. 그렇지만 사실 공공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좋은 것’을 규정할 수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가치를 다 반영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여러 가치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거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소중한 거다. 사람들이 문학을 통해서든 다른 무언가를 통해서든 저마다의 가치를 찾기 위해선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여유’와 거의 같은 말이다.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해야 하는 사회에 살면서 ‘누가 못 놀게 했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자유와 여유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유는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인 힘이다.

6.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여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생각엔 없다. 이미 대부분의 우리들은 여유롭기 힘든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 혹은 달관의 힘 없이 우리의 삶에서 여유를 기대하는 건, 아쉽지만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우리가 여유를 가진다면 그 시간을, 그 자본을, 그 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우리 삶에 강제로 끼워넣으면 된다.

역설적이지만, 한마디로 우리는 강제로 여유로워야 한다.

우리는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들 – 혁신, 경제적 지위, 가정 꾸리기 –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 – 세상 알아가기, 아름다운 것들 만들고 보고 즐기기,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기 – 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보통 이러한 것들은 여유로울 때, 자연스럽게 삶에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슬프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적극적으로 예전에 여유가 우리에게 주었던 선물에 다가가는 것밖에 없다. 강제로 돈 내고 헬스장에 우리를 끼워 넣듯.

7.

분명 소설은 공공의 의사 결정에서 보다 개인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 여지를 높여 줄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듯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모든 권리는 책임을 동반한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선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물론 나는 소설 읽기가 우리 사회의 많은 결핍을 훌륭하게 채워줄 수 있는 수단이라는 누스바움의 생각에 동의한다.

8.

소설의 재미를 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시간과 노력은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시간과 노력보다 훨씬 길고 크다. 어떻게 하면 보다 깊은 즐거움을 선호하기 시작하는 티핑 포인트를 넘길 수 있을 것인가.

위에서도 말했듯, 소설 읽기를 강제로 삶에 끼워넣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운동하게 하기는 어렵지만, 헬스장에 등록하게 하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마찬가지로 소설을 읽게 하기는 어렵지만, 소설 읽는 모임에 가입하게 하는 건 쉽다.

9.

누스바움은 이성과 합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하지만, 나는 여기에 ‘아직은’이라는 단서를 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이성과 합리가 우리의 감정을 포함한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우리가 이성과 합리의 한계를 인지하고 직관과 감성과 잉여가 갖다주는 창발적인 스파크를 활용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인스턴트 음식이 건강에 안 좋은 이유는 지나치게 정제돼서 장내 세균 분포가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인간이 함부로 영양소를 정제해도 될 만큼 영양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알약으로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정말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까지는 밥도 먹고 야채랑 채소랑 과일도 먹고 고기도 생선도 먹고 국도 먹고 찌개도 먹고 나물 반찬도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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