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료’ 단상

<개념 의료> 다 읽었다.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좋은 책이었다. 즐겁게 읽었다.

1.

사람들은 ‘경험’에 지불하는 돈을 아직 아까워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이는 무형의 서비스가 제값을 받기 어렵게 만들고, 가격의 저하는 품질의 저하로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그냥 ‘인건비’에 대한 태도 자체가 이중적인 것도 같고.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일을 하는 시간은 조금 더 제값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대부분의 경우에, 낙수효과는 기대해서는 안 되는 효과라고 본다. 언뜻 보기에는 높낮이의 차이로 보일 수 있지만, 제대로 살펴보면 아예 층위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항상 사람이 부족한 중소기업 놔두고 대기업에 구직자들이 몰리는 게 아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쨌든 잘 되는 병원 분과는 있을 것이고, 그래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경쟁이 덜 치열한 분과를 선택하는 게 더 나은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그럴라고 의대 간 사람들일 거 아니겠는가.

경쟁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곧 품질의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경쟁을 통한 품질의 향상은 ‘perceived value’의 향상이다. 애플의 제품을 쓰는 것이 주는 여러 문화적인 간지가 그 예다. 그렇지만 의료 서비스의 경우에는 그런 식의 perceived value이 아무리 높아져봤자 소용이 없다. 실제로 서비스를 구매한 사람들의 건강이 증진돼야 한다. 의료 서비스 시장에서의 경쟁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려면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환자들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데, 어떤 식의 경쟁일 지 나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3.

종욱 형이랑 카피 약과 생동성 실험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정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종욱 형은 ‘필요한 정보를 찾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완벽히 충분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은 오지 않는다. 결국 ‘어느 정도로 정보량이 확보된 상태에서 판단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데, 종욱 형은 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될 수 있으면 많은 정보’ 쪽이고, 나는 종욱 형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될 수 있으면 빨리 결정’ 쪽인 것 같다.

‘인간에 대한 믿음’ 이야기도 했다. 형은 ‘일단은 믿는 것으로 갔으면 한다’고 했고, 나는 인간 일반에 대한 태도는 일단 불신이어야 한다고 했다. 애정과 믿음은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다.

4.

박정희가 도입한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과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거의 모두의 반발을 뚫고 이토록 빠르게 의료보험제도를 정착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밀어붙이기 식의 추진이 유효했던 것 같다고 했다. 종욱 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70년대는 이미 반 세기나 지난 일이고,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어느 정도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산적이기 힘들다. 그래도 몇 가지 가치 판단에 대한 개인의 선호를 알기에는 좋은 주제다. 예를 들어, 나는 모두를 위한 거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멋진 일은 필요한 동시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일을 할 땐, 논리적이고 감정적인 설득이 주가 되겠지만, 아마 때로는 다른 종류의 설득을 이용할 때도 있을 거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힘싸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거고.

아마 종욱 형이라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라고 하겠지. 맞는 말이다. 내가 마음껏 내 신념을 밀고 나가도 되겠다고 믿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양반이 이토록 신중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5.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건데, 아직 우리 사회는 그 늘어날 수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감조차 못 잡은 상태인 것 같다. 어마어마한 혼란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 기회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맞물릴 거고, 이는 의료 전문가가 아닌 우리에게도 유효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6.

나는 현대 사회에서의 거의 모든 활동이 ‘니즈의 반영’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 대해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 니즈라는 게 꼭 좋은 걸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표를 얻기 위해 전국민의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이상, 훌륭한 행정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매우 선량하고, 매우 투철한 영웅적인 정치인이 아니면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개혁’은 이뤄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증세를 통해 사회 안전망을 충분한 정도로 확충하는 일이라든가.

그래서 말인데, 이러면 어떨까 한다. 어설프게나마 막 상상이라는 걸 해 보자.

  1. 정기적으로 시험을 본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지식과 논리, 그리고 사회성을 테스트하는 시험.
  2. 반영되어야 하는 계층 쿼터를 만든다. 지역, 성, 소득, 산업 등 다양할 것이다.
  3.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획득한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 쿼터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최상위 점수자에게 쿼터를 채울 때까지 선거권을 부여한다.
  4. 이렇게 되면, 표를 던지는 사람들은 : 최소한의 대표성(쿼터), 역량을 가지게 된다.

러프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현재 포퓰리즘으로 점철된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매우 민감한 주장이다. 투표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투표는 권리이기도 하지만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가 판단하기에 충분한 정도로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을 경우 선거권에 일정 수준의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종욱 형은 투표권은 설령 책임을 다하지 않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할 권리라 했다.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싸우고, 메일도 한두 차례 주고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이야기했다고 한다.

7.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애정은 적극적인 애정이다. 행동하는 애정이다. 저돌적일 정도로 인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따지고 또 따지고 들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좋아야 한다. 내 삶이 최대한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최대한. 이왕이면이 아니라, 적당히가 아니라, 최대한. 조금이라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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