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 후 1년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세월호는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입을 잘 여는 편이었다.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학생이었고, 따라서 당당했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간 다음에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세월호가 가라앉고, 얼마 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침공했을 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게 누군가를 비판하고 방향성을 제시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넌 얼마나 떳떳하게 살고 있길래 그런 쓴소리를 그런 표정으로 할 수 있느냐. 찝찝함은 조금씩 커져 갔고, 다른 요인들과 맞물려 티핑 포인트를 넘긴 어느 날 나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

세월호는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분노하게 만들었다. 비장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슬픔을, 이 분노를, 이 비장함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싸우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유쾌하고, 조금은 쿨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 깊이 새겨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유쾌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1년이 지난 오늘, 공교롭게도 날씨까지 우중충한 오늘, 돌이켜 보니 내가 뭘 했나 싶다. 그래 너무 전투적이지 않고 너무 비장하지 않은 건 좋다 이거다. 그렇지만 뭐가 좋지 않다 이야기하기 전에 난 뭘 했나. 딱히 한 게 없었다. 미래의 충분함으로 지금의 부족함을 덮는 게 싫어서 회사까지 나왔는데, 세월호와 관련해선 여전히 ‘나중에’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고작’ 프로필 사진 하나 바꾸고, ‘고작’ 잊지 않겠다는 뻔한 말만 반복하는 건, 그 ‘고작’이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고작’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난 언제 세상에 진 빚을 갚으려 하는가.

별 거 아니라는 거 알고, ‘고작’이라는 거 잘 알지만, 일 년이 지난 오늘 내가 아직도 가슴 한 켠에 불편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 위해서라도 광화문에 다녀오려 한다. 함께 회사를 나와 함께 회사를 차리려 하는 동반자와 함께 가서 웃고 떠들다 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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