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세계에서 진보의 세계로

진화는 생존의 결과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면, 개체는 세대를 거치면서 생존에 최적화된 DNA를 가꿔나간다. 그렇지만 생존력이 강하다고 반드시 더 가치있는 것은 아니다. 바퀴벌레 좋아하세요?

한마디로, 진화의 세계는 철저히 가치중립적이다. 살아남는다고 더 멋진 것도 아니고, 도태된다고 해서 쌤통인 것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살아남을 만해서 살아남았고, 여건이 안 돼서 스러져갔을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화의 세계에서 살면 안 된다. 진화의 세계에서 진화의 룰대로 살면, 우리 삶의 가치는 철저하게 운에 맡겨진다. 마침 세상이 간지나는 놈이 살아남는 세상이면,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투쟁했을 뿐인데 간지가 따라오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겠지만, 운 나쁘게도 X같을수록 유리한 세상이면 난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살고 봤더니 X 돼있는 거다.

진화의 세계는, 적어도 가치적인 측면에서 볼 땐 도박의 세계다. 도박이 괜히 범죄겠나. 내 삶의 가치를 룰렛에 맡겨 버리는 건 죄 짓는 거다. 물론 ‘생존 자체가 가치’라거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고 나오면 할 말은 없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세계는, 진보의 세계다. 진보는 진화와 다르다. 진보라는 단어에는 가치 판단이 개입돼 있다. 진화는 단순 생존의 결과지만, 진보는 가치 있는 생존의 결과다. 모든 진보는 진화지만, 진화라고 다 진보는 아니다. 진보는 좋은 거지만, 진화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진화는 ‘이전과는 다른 상태’지만, 진보는 ‘이전보다 나은 상태’다.

ㅋㅋ사실 누가 일부러 진보의 세계를 버리고 진화의 세계에서 살아가겠나. 그 놈의 생존이 언제나 급박한 이슈라 문제지. 세상은 절대로 우리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아오 진짜 잠시도 안 준다. 살아가기 급급할 수밖에 없는 게 삶이다. 당장 시험 봐야 하고, 취직 해야 하고, 월세 내야 되고, 월급 줘야 되는데, 이게 진보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틈이 어디 있나. 배부른 소리 마라 너가 아직 고생을 덜 해봤지

게다가 일단 살아남기만 하면, 세상은 우리를 쉽게 죄인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들은 진보와 진화를 쉽게 혼동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존재하기만 하면, 어지간해선 정당할 수 있다. 솔직히 찾다 보면 어딘가엔 숨어 있지 않겠나. 그 가치라는 거 말이다.

그렇지만 진짜 멋진 건,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아도 멋지다. 무언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말들이 필요하다는 건, 둘 중 하나다. 뭔가 구리거나, 아니면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레알 멋지거나.

허울 좋은 가치, 백 년 뒤면 잊혀질 싸구려 가치로 만족하지 않을 거라면, 모름지기 생존 방식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볼 일이다. 고민보다는 투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겠다. 어쨌든 일종의 핸디캡이니까, 꽤나 험난할 수밖에 없거든. 뭐, 제발 우리들이 살아갈 세상이 멋진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는 세상이길 바라는 수밖에.

승자 어드밴티지에 힘입은, 따지고 봐야 멋지고 / 따지고 보면 별 거 없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진 않다.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역사가 가치라고 인정할 만한 가치’를 만들어 내고 싶다. 그러니까, 제발 진화가 아니라 진보를 일궈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우리는 진보의 세계와 진화의 세계가 겹치는, 기적같은 순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세상은 아름다워야 살아남는, 그야말로 꿈 같은 세상이겠다. 일단은 무조건 정도를 걸어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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