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한테 엄격하고, 누구한테 관대할 것인가

딱히 내 한몸 불사른다고 세상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인간이 사회라는 걸 만들고 살아오면서, 한 번이라도 돌아가는 꼬라지가 제대로였던 적이 있기는 한가. 원래 세상이라는 게 이런 거다. 정의니 도덕이니 뭐니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전부 인간들이 허구언날 치고박기 뭐해서 정해놓은 일종의 약속에 불과한 것 아닌가. 쓸데없이 정색하고 핏대 세워가며 조국이니 민족이니 해방이니 해봤자, 역사의 이슬로 잊혀지면 끝이다. 차라리 그냥 눈 딱 감고 당장 내 눈 앞에 놓인 이 기회에 올인하면, 적어도 내 한몸은 제대로 건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먹고 사는 걸 넘어서서,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업계에서 끗발 정도는 세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닥치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상이나 타자. 고민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고작 여기서도 일등 못 하면서, 사회니 뭐니 떠드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니겠나.

<근대의 시선, 조선미술전람회>의 글쓴이는 조선미전이라는 규율 권력에 허무하리만치 무력하게 굴복한 당시의 미술가들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서술했다. 그렇지만 과연 글쓴이가 저 시대에 살았다면? 일제는 나날이 강성해지고, 뭔진 모르지만 대륙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는 미국이라는 나라와도 당당하게 맞서 싸울 정도라는데, 고작 코딱지만한 반도에서 환쟁이로 살아가는 개인이 뭘 할수 있었겠는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하는 삶은 멋지다. 아니 멋진 정도가 아니라, 경외롭다. 사실 경외롭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숭고하다. 그렇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위험천만한 삶을, 그 어떤 결과도 보장되지 않는 도전을 권유하는 것은 월권이다. 너나 나가 죽어 인마.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에게는 엄격하게, 그러나 타인에게는 관대하게.’ 도의적으로 생각하면 이게 맞다. 나 혼자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다가 운 좋게 나와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감사하며 함께할 뿐. 그렇지만 문제는 세상에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변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게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이라면 괜찮을 수 있다. 애초에 목적 자체가 ‘내가 잘 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원하는 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져도 제대로 달라진다. 동료는 무조건 필요해진다. 그리고 목표가 크면 클수록, 이 동료들의 태도와 역량 역시 무지막지하게 중요해진다. 조선미전이라는 규율 권력을 뒤집어 엎고, 진정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미술을 이 땅에 꽃피우겠다는 목표를 이루려 한다고 치자. 이게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겠나.

한마디로 딜레마다. 사회를 바꾸려 하는 사람으로서,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이해와 배려는 자칫 ‘자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비정상적인 태도와 역량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아 어쩌라고! 도대체 폭력과 자위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지점에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 중에 딜레마 아닌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것처럼 답 안 나오는 딜레마도 없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보다 우호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건 자위 쪽인 듯하다. 그 쪽이 보다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쪽 노선(?)을 택하면, 그 누구에게도 딱히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살 수 있다. 가끔 운 좋게(?) 단발성 타격을 입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개 그 대상은 사회에서 충분히 ‘악’으로 통하는데다가 그마저도 일시적인 피해에 그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괜찮다. 그러니까, 러브 앤 피스 라이프로 살기엔 이만한 방식이 없는 것이다. ‘내가 당신 몫까지 열심히 살게요’라니, 이렇게 아름다운 태도가 또 어디 있나. 함께하기에도, 이쪽 사람들이 더 좋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반면 폭력 노선에 서 있는 사람들은 여간 피곤한 사람들이 아니다. 애초에 ‘자위’와 ‘폭력’이라는 단어의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듯, 이쪽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 산다.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뛰어남을 요구하고, 강인함을 강요한다. 더 짜증나는 건, 폭력의 명분으로 그럴듯한 비전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무능하고 싶어서 무능한 게 아닌데, 나약하고 싶어서 나약한 게 아닌데, 이쪽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자신의 무능함 또는 나약함이 때론 마치 죄악처럼 여겨진다. 이건 너무 비참한 일이다. 게다가 애초에 비전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뼈 깎고 살 베어가며 매진한 결과가 반드시 위대한 성취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X되는걸 보장합니다’라고 해야 될지도.

나는 어떤 쪽일까.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프로페셔널 마스터베이터’보다는 ‘프로페셔널 지랄러’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워낙에 이랬다 저랬다 해서 ‘앞으로도 쭉 이쪽 사람으로 살겠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유는 간단하다. 2014년의 윤수영은 ‘옳지 못한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백 년 후 어떤 삐딱한 젊은이가 이렇게 물을까봐 두렵다. ‘그래서 쟤가 바꾼 게 뭔데? 좋은 사람이었으면 뭘 해? 한 게 없는데.’

동료가 필요하다. 그것도 위대한 동료가 필요하다. 위대한 동료란, 단순히 뛰어난 동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뛰어나면서 믿을 수 있고, 믿을 수 있으면서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다른 방식으로 그곳에 다다를 수 있는 동료가 바로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동료다. (너무 감사하게도 나는, 현 시점에서 내가 그러한 동료들이라고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중이다.ㅎㅎ;;)

이런 위대한 동료들을 모았으면, 위대한 팀을 만들어야 한다. 조직과 문화와 규칙이 기적같은 시너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아무리 어마어마한 멤버들을 모아놔도 소용이 없다. 팀은 개개인의 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여기서 또 한번의 폭력을 경험해야 한다. 팀플레이를 위해선, 때로는 각자의 개성을 죽여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양보치곤 좀 심할 정도로, 자신의 선호나 이해관계에 반하는 결정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쓰다 보니, 새삼 ‘동료를 모아 팀을 꾸려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을 꾼다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느껴진다. 공동의 목표라는 허상을 위해 이게 뭔 개소린가 싶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지랄의 대상’을 잘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무한테나 지랄을 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인데다가, 별 소용도 없기 때문이다. 내 경우,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나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중, 동료로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 이른바 ‘엄격함’을 들이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친해질수록 지랄하는 스타일이라니!) 물론 나름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고는 하지만, 타율(?)은 낮다. ‘누구한테 어떻게’ 엄격함을 요구해야 하는지, 그 기준과 방식에 대한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거다. 확실한 건 이거 하나다. 누구보다도 나에게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 당연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너무 많아서 미칠 지경이다. 아마 평생 부족하겠지.

어쨌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저와 같은 태도와 역량을 요구할 생각은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목표를 달성할 생각이 그다지 강하지 않거나, 아니면 혼자서도 그 목표를 달성할 자신이 있는 사람일 거라고. 나는 꼭 문제를 풀고 싶지만, 그 문제를 혼자서는 풀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을 애타게 찾고, 열심히 붙잡고, 때로는 억지로라도(;;;) 끌고 갈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우리는 백사장 속 모래 한 알의 확률로, 위대한 성취를 일궈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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