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놀다 오니, 다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젊을 땐 한번쯤 배낭을 둘러메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고, 그러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나는 스무살 여름에는 이탈리아에 갔었고, 스물셋의 끝무렵과 스물넷의 초입은 프라하와 터키에서 보냈습니다. 매우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한 달, 두 달을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보지 못한 것들을 많이 보게 되며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비행기 한 번 안 탄 동년배들을 저 멀리 떼어놀 정도의 깨달음은 아닙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 나이에 한두 달 동안 수백만원씩 쓰면서 추구할 성장도 아닙니다.

여행은 즐거움입니다. 돈 있고 시간 있는, 복 있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최고급 유흥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런 호사를 마음껏 누리는 게 좋습니다. 다만 분에 넘치는 여행질은 분명 사치입니다. 나는 여행에 성장이며 젊음 같은 각종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그건 재밌는 걸 하고 싶은데 그저 즐기기만 하자니 민망해서 ‘이건 마냥 재밌기만 한 건 아니라 유익하기도 해’ 라는 식으로 애써 정당화하는 겁니다.

여행은 나와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러 다니는 일입니다. 나는 여행을 통해 그들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내게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들과 나의 동질성이었습니다. 서로 상이한 구석들을 하나씩 하나씩 덜어낸 후 남은 것이 우리의 삶의 핵심이고 본질이라는 것을 발견할 때, 그리고 그러한 발견이 누적될 때, 우리는 사람에 대해 배웁니다. 그것은 큰 돌덩어리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고 깎아내어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성경과 코란, 말과 낙타, 치파오와 유카타, 이런 거추장스러운 구름들을 걷어내야 인간이라는 태양이 보입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반도 역사, 중국 역사, 로마 역사, 이집트 역사, 이들을 읽다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은 다 이렇고 저렇게 삽니다. 나폴레옹이며 시황제며 아타튀르크며, 특별하고 유일한 것 같은 이들도 다 같이 ‘영웅의 삶’ 이라는 것을 삽니다. 영웅이며, 악인이며, 범인이며, 이들은 모두 ‘인간의 삶’ 을 삽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하지만, 모두가 특별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삶을 삽니다. 여행을 통해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우리는 모두 특별하기 때문에 서로의 특별함을 존중해야 하고, 우리 모두는 평범하기 때문에 자신의 평범함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이런 배움을 꼭 여행에서 얻을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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